"이동권 보장하라" 장애인단체 지하철역 시위‥지하철 5호선 지연
서울 지하철 5호선 곳곳에서 장애인 단체들이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시위를 벌여 출근시간대 열차 운행이 지연됐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오늘 아침 7시쯤, 5호선 왕십리역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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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귀국한지 한 달만에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닷새간 입원을 했고 집에서 쉬며 요양을 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퇴원 후 발이 근질근질해서 혼자서 여기저기 다녀보려고 해봤다. 귀국하자마자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외식하러 나가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운전을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의사가 허리에 좋지 않으니 30분 이상 운전을 하지 말라고 했다. 서울처럼 차가 막히는 곳에서 30분 이상 운전을 하지 말라는 건 운전을 포기하라는 거나 다름없다. 한국 운전자들 행태를 보니 운전하기가 겁나서 일찍이 포기하기도 했다. 킥보드와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곡예 운전을 하고 자동차 운전자들이 전반적으로 양보심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수석에 앉은 상태에서 남편이 운전하는 모습만 봐도 내가 긴장이 된다.
허리 통증 때문에 계단 이용이 불편해서 최대한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혼자 집을 나섰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허리디스크 환자가 서울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기는 굉장히 힘이 들었다. 유독 힘이 들었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상황 1) 성질 급한 한국인들
암사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이었다. 암사역 출구에서 시작되는 에스컬레이터는 성인 한 명이 서면 꽉 찰 정도로 폭이 굉장히 좁다. 벽에는 걷거나 뛰어내려가지 말고 가만히 서서 손으로 에스컬레이터를 붙잡고 내려가도록 안내문이 적혀 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내용이다. 내 뒤에 서 있는 아주머니께서 나를 지나쳐 걸어 내려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거절을 어려워하는 바보같은 나는 알겠다고 하고 옆으로 돌아섰다. 그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내 몸에 가한 마찰과 충격 때문에 허리 통증이 전신을 울려퍼져나갔다. 거절을 하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지하철 출발 시각 전에 타기 위해 상대방의 공간과 안전을 그렇게 위협하면서까지 걸어내려가야했던 그 아주머니의 성급함과 부주의함이 더 원망스러웠다.
천호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미 타신 분들이 여럿 되었고 내가 타는 동안 문이 닫힐까봐 우려가 되어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탔다. 그랬더니 먼저 타신 어르신 중 한 분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그걸 왜 눌러?"라고 타박을 줬다. "타는 도중에 문이 닫힐까봐서요."라고 답했더니 장애인용이라 문이 그렇게 빨리 닫히지 않으니까 누를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가 보다 하고 별 대꾸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그러게 알지나 못하면 가만히 있던가."라고 내 신경을 결국 긁는다. "별 거 아닌 거 가지고 되게 뭐라고 하시네요. 급하세요?"라고 물어더니, 허리가 너무 아파서 빨리 한의원에 가고 싶어서 그러신단다. 이 고통은 내가 극히 공감하는 고통이라서 별 대꾸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부턴 어르신들이 모두 타시고 올라가신 다음에 그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면 그걸 탄다.
상황 2) 수리 중인 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
수리 중인 경우에는 답이 없다.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역이라면 둘 중 하나가 고장 났을 때 다른 걸 탈 수 있지만 오래된 역은 그렇지 않다.
상황 3) 연계되지 않는 엘리베이터
지하철역의 B3은 승강장, B2는 개찰구, B1은 출구이다. 이 3개의 층을 하나의 엘리베이터로 다닐 수 있다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갈아타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둘 중 하나가 고장나면 연계가 되지 않아 영락없이 계단으로 다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엘리베이터를 연계해서 타는 방법 또한 알기 쉽게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상황 4) 성질 급한 버스 운전기사들
허리가 아프면 버스에 오르내릴 때 시간이 더 필요하다. 좌석에 앉고 일어날 때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보통의 버스 운전기사들은 승객의 버스 내 안전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운전을 하기 때문에 나는 전략이 필요했다. 버스에 탈 때는 제일 먼저 탈 수 있도록 했고, 좌석은 내리는 문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택했고, 부득이하게 내리는 문과 좌석 사이의 거리가 멀 때는 중간중간 버스가 멈출 때 내리는 문에 더 가까운 좌석들로 계속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가장 먼저 내릴 수 있도록 애썼다.
호주와 캐나다에서 몇 년씩 살면서 본 게 있고, 더욱이 허리디스크 때문에 준장애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 이동권에 있어서만큼은 한국이 얼마나 미개국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의 장애인들의 이동권 요구는 역사가 길다. 2001년에 시작되었고 벌써 20년째이다. 그들의 평화로운 시위를 나도 비장애인으로서 그저 지나치며 남일 보듯이 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캐나다와 호주의 친절한 버스 기사들과 승객들, 그리고 장애인도 다닐 수 있는 길과 건물들을 보며 막연히 한국도 저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내가 장애인과 비슷하게나마 생활을 하게 되고 나니 그들의 다소 과격한 오늘의 시위가 이해가 간다. 나는 한두달의 불편만으로도 불만이 팽배한데 이들은 20년간 당연한 권리를 무시당한채 한결같이 목소리를 내왔다. 그런데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려고 한단다. 하루의 출근시간 지연만으로 이들의 시위를 규탄하는 비장애인 시민들이 있을줄로 안다. 하지만 당신도 어느 날 허리가 아플 수 있고 다리를 다칠 수 있다. 그 날을 상상하고 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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