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3년 살면서 그리웠던 것 중에 하나가 목욕탕에 가서 세신을 받는 일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여성 전용 사우나에 가서 세신을 받으면 묵은 때가 벗겨져 나가면서 온몸의 피가 활발히 도는 느낌이 들고 밤에 잠도 잘잤다. 너무 바빴던 시기에는 세신 받을 때만이 유일하게 멍 때릴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밴쿠버에도 한국식 목욕탕이 하나 있었다. Port Coquitlam에 위치한 나의 직장은 하이웨이를 따라 위치해 있었는데, 하이웨이 맞은 편 안쪽에 광역 밴쿠버 유일의 한국식 목욕탕이 자리잡고 있었다. 거기에 가서 세신을 받으면 팁을 포함해서 백달러는 우숩게 넘어간다는 말을 듣고서는 도저히 그 목욕탕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세신을 받지 않는 이상 내게 목욕탕에 갈 이유는 없었으니까. 이사한 집에서 욕실 공사가 일주일이나 걸리는 바람에 샤워를 하기가 힘들었을 때조차도 나는 돈을 아끼고자 그 목욕탕을 찾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는 코로나 때문에 목욕탕을 찾지 않았다. 나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코로나 이후로 700개가 넘는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러나 세신 때문에라도 목욕탕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작년 10월 이전에는 순전히 쾌락 추구의 목적으로 세신을 원했다. 그러나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5일간 대학병원에 입원해야했던 작년 10월 이후에는 내 몸을 정갈히 하는 일이 미션 임파서블이 되어 세신이 꼭 필요해졌다. 발톱을 깎는 일조자 큰 도전으로 느껴질만큼 나는 허리 통증에 압도되어 몸이 오래된 각질로 포위되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나 자신도 기준을 모르겠지만 참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오늘 오후에 동네에 있는 사우나에 혼자 다녀왔다. 목욕탕에 가보지 못한 지난 4년간 입장료는 9천원, 세신비는 2만3천원으로 올라 있었다. 세신비는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고 같았다. 사람들이 탕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 불안했지만 평일 늦은 오후라 그런지 그나마 사람 수가 적어서 견딜만 했다. 옷을 벗고 탕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내 사물함 열쇠와 현금 2만3천원을 세신사 분께 맡기고 샤워를 시작했다.
세신을 받는 동안 오랜만에 느껴보는 개운함을 즐기며 멍을 때리기도 하고 세신사분과 몸의 통증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세신사 분은 시종일관 마스크를 쓰고 계셨다. 그러나 중간에 어떤 분이 마스크를 안 쓰고 들어와서 세신사 분과 미나리 주문에 대해 말할 때는 좀 불편했다. 세신을 받느라 누워있는 내 얼굴 위로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여성 사우나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통지 문자를 몇 번 받았을 때 막연하게 떠올렸던 감염 경위와는 사뭇 달랐다. 그 때는 적어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부주의한 행동 때문에 확진자가 생겼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탈의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금해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수다를 떠는 사람은 존재했다. 탕 공간에서 나와 수건으로 물기를 재빠르게 닦아내는 동안 그 사람을 주시했더니 내 눈길을 느꼈는지 그 자리를 떴다. 물이 흘러 내리지 않을 정도로만 닦아 아직 꽤 젖은 머리를 하고 내 사물함을 열자마자 마스크를 찾아 썼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1분 1초를 더 머무르기가 무서운 공간이었다.
아직 영업 중인 목욕탕과 세신사가 있는 동네에 살아서 운이 좋다고 해야하나. 목욕탕이 없어진 동네 주민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해서 다른 동네의 목욕탕에 가기도 한단다. 한편, 1인 세신샵도 등장했다. 다른 사용자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는 프라이빗한 1인 목욕탕으로 예약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욕조 없는 집에서 사는 엄마가 그간 코로나 때문에 목욕탕에 가지 못했는데 가시라고 알려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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