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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 밴쿠버

Medray Imaging, 밴쿠버에서 초음파를 찍고 싶다면

by 이령맘 202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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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어느 새벽 2시 30분에 나는 깨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술도 안 마셨는데 토하고 싶어서 자다가 깬 건 처음이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잤던터라 위장에 남아있는 음식도 없을 터였다. 토하고 나서 보니, 노란색 덩어리가 변기 안에 둥둥 떠다녔다. 저게 뭐지 하고 수초간 바라보다가 색 때문인지 담낭에서부터 올라온 그 무엇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직업 정신이 투철해서 구토물 사진을 찍어놓을 생각도 못하고 변기 물을 신속하게 내리고 매니저와 원장에게 연락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구토를 하면 바로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로부터 격리하고 부모에게 데리러 오라고 연락을 한다.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구토를 하면 출근할 수 없다. 새벽 3시경에 매니저와 원장에게 출근할 수 없다고 연락을 하니, 스케줄이 신속하게 조정되었다. 원장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내게 최대한 빨리 의사와 얘기해 보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진료 문화가 활발해져서 비교적 이른 시각에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아침 9시 무렵 화상통화를 통해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니 응급실로 바로 가라고 했다. 명치 위쪽으로 통증이 심해서 의자에 앉아있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남편이 밴쿠버 New Westminster에 있는 Royal Columbian Hospital로 운전해서 나를 데려갔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없이 환자 혼자 들어가야했다.

서글펐지만 혼자 터벅터벅 들어가니 입구에 기초 문진을 하는 곳이 있었다. 그 곳의 의사가 내 체온을 재고 증상을 듣더니, 811에 전화했어야 한다고 약간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어서, 나는 의사와 이미 얘기를 했고 그 의사가 나한테 응급실에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기초 문진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의사가 오라고 해서 왔다고 얘기했어야 했나 싶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811은 요즘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으면 가장 먼저 연락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가이드라인을 받는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의사를 기다리라고 해서 의자에 앉았는데 통증 때문에 신음 소리가 절로 났다. 가림막을 양쪽에 두고 다른 환자들과 한 공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활짝 열려있는 입구 맞은편에 앉아 있어서 지나다니는 모든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보는 자리였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소문을 듣자니 응급실에서는 몇 시간도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는데, 이런 불편한 곳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리다 보면 안 아프던 곳도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30분만에 의사가 왔다. 고열과 복통이 코로나 증상이라 코로나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통증이 상복부와 가슴에 있는 걸로 봐서는 속쓰림이라고 했다. 여태까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다가 회를 엄청 많이 먹은 다음 날 아팠다고 말했는데도, 그냥 속쓰림이라고 했다. 그래서 빠른 진통제를 주겠으니 그걸 일단 먹으라고 했다. 나는 사실 담낭 쪽에 이상이 의심되어서 전날 회를 많이 먹었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는데, 그 말이 의사의 한 귀로 들어갔다가 다른 한 귀로 나오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하필 의사가 준 진통제가 잘 들어서 담낭 이상이라는 의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바로 이어서 진행된 코로나 테스트는 콧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그 실뱀 같은 막대의 위력으로 내 의심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의사와 간호사의 친절함, 그리고 MSP 덕분에 돈 한 푼 안 내고 응급실을 걸어나오는 가뿐함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약국에 가서 처방전을 제출했다. 통증 때문에 응급실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왔다고 하니 아이고라는 추임새로 공감 능력 보여주신 한인 약사 덕분에 기분은 더 좋아졌고, 마지막으로 직장 의료보험으로 2주치 약값이 고작 2.3불 나와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약도 알이 작아서 먹는 데 부담이 전혀 없을 것 같아서 좋았고, 이것만 먹으로 낫겠지 하는 기대감 때문에 별로 우울하지는 않았다. 

약을 성실하게 다 먹기도 했고, 과식과 자극적인 음식 섭취를 피한 덕분에 속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회복된 느낌이 아니었다. 음식을 먹을 때 느껴지는 속의 부담감으로 그걸 알 수 있었는데, 이 병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그래도 야금야금 점점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회복해 나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체중이 너무 빠졌다. 한 달만에 5 킬로그램이 빠지고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아니다 싶어서 다시 온라인으로 예약을 걸어서 의사와 통화했다. 온라인 예약을 하는 경우, 기초 문진을 온라인 상에서 설문지 작성으로 대체한다. 의사가 그걸 보고 내게 증상 얘기를 듣더니 초음파를 받아보라고 requisition을 발급해 주었다. 

캐나다에서는 아무런 증상 없이 초음파를 받기가 불가능하다. 사비를 들여서 찍겠다고 하면 말리지 않겠지만, 캐나다 국민건강보험인 MSP의 혜택을 받아 무료로 초음파를 받고 싶다면, 의사의 소견으로 초음파 촬영이 필요함을 입증하는 requisition을 받아야 한다. 나는 사실 한 달에 체중이 5 킬로그램 빠졌고 기름지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아프다고 해서 의사가 바로 초음파를 받으라고 할 줄은 몰랐다. 의사가 이메일로 보내준 requisition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최하단에 의사의 소견이 짧게 한 줄로 적혀 있었다. 담낭(gallbladder) 쪽 이상이 의심된다고 했다. 아 거봐 담낭 이상이지!하는 생각이 쑥 올라오면서 잠깐 화가 났지만, 이 참에 초음파를 받으니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화를 그만 내기로 했다. 

원장이 초음파 촬영할 곳을 추천해줬다. Medray Imaging(www.medrayimaging.com)이라는 곳인데 직장에서 매우 가까웠다. 본인이 임신했을 때 갔던 곳이라고 했고 평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의사에게 요청해서 requisition을 Medray Imaging에 팩스로 보낸 뒤, Medray Imaging에 연락해서 예약을 잡았다. 전화한 시점으로부터 2주 뒤로 예약이 잡혔다. 캐나다에 살면서 기다림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2주가 마냥 길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초음파 촬영을 하던 날, 촬영을 담당한 테크니션에게 A&W에서 파는 해쉬브라운을 먹고 가슴에 어마무시한 통증이 찾아왔다고 얘기했더니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는 경우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있어서 그런지는 말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궁금해서 동료들에게 물었더니, 원래 초음파 촬영을 하는 테크니션이 단독으로 촬영 결과를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초음파를 촬영한 곳에서 1차 의견을 의사에게 보내면 의사도 촬영 이미지를 보고 해석을 해서 내게 최종 결과를 말해준다고 한다. 내 위와 간을 촬영한 테크니션은 이틀 후에 의사가 연락을 할 거라고 했지만, 역시나 캐나다 의사답게 연락은 제 때 오지 않았고, 내가 주말에 보이스 메일을 남기자 다행히 월요일에 바로 연락이 오기는 했다.

결과는 담석이었다. 거봐 내가 담낭 이상이랬지 우쭐한 마음과 암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도 담석은 담석이니 기름진 음식과 과도한 단백질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도 되겠지 싶다. 내 소식을 들은 측근들은 한국 같았으면 바로 수술을 할텐데 캐나다에 있어서 어쩌니 했다. 검색을 좀 해보니, 측근들이 말하는 충격파 쇄석술은 부작용 때문에 이제 잘 사용하지 않고, 제거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복강경 수술을 한다고 했다. 나의 경우에는, 담석이 아마도(probably)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단, 악화되면 응급실에 가서 general surgeon에게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나. 내 몸을 그간 어떻게 사용해왔는지에 대해 반성하고 좀 더 건강한 식생활을 하기 위한 터닝 포인트가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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